지금 생각해보면 큰 결심을 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을 관람 할까 말까 망설이다 그냥 나오게 됐다. 앞서 포스팅에도 이유를 적었지만, 박물관이나 미술관, 사진관 등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지의 가장 기본코스로 항상 이러한 전시관을 먼저 선정한뒤 코스를 정하는 편이다. 

한국 예술보다는 서양의 유럽풍 르네상스 미술을 선호하는 편이고, 특히 바로크 미술양식이나 로코코 미술양식, 매너리즘 미술양식을 좋아한다. 근현대 미술은 아무래도 팝아트가 좋긴한데, 인공적인 요소가 너무 많이 가미된 팝아트보다는 미술 그림 그 자체로서의 팝아트를 선호하는 편이다. 

그런데 SF현대미술관의 인포데스크에는 관련자료들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미술관 이름만 봐도 알수 있겠지만 근대 자료도 찾아 보기가 힘든 1900년대의 현대작품들로만 전시되는 곳으로 디지털 아트관, 미술관, 조각관, 사진관 등이 있는 곳이다. 가장 끌리는 것은 현대 사진관이 가장 끌려서 이부분만 가볼까 생각했다가도 정말 한번 보기 시작하면 해질때까지 안나올것 같은 느낌이 너무 강력히 느껴지는 바람에 나를 스스로 통제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냥 그렇게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을(SF MoMA)를 빠져 나왔다. 이런 아쉬움을 남겨놔야 나중에 다시 추억을 되새기며 다시 찾을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을 빠져나오면 바로 눈 앞에 분수들이 눈에 띤다. 살짝 쳐진 어깨를 이끌고 그곳으로 향했다.




아, 이곳이 Yerba Buena Garden(예르바 부에나 가든 혹은 예바 부에나 가든)이었다. 사진에 나온 Yerba Buena Center for the Arts는 SFMoMA에서 건너편으로 건너와 오른쪽으로 1~2분 정도만 더 걸으면 나온다. 예바 부에나라는 것은 샌프란시스코를 포함한 캘리포니아 주에서 자라는 다년생 덩굴을 말한다. 또한 이 샌프란시스코는 1760년대 에스파냐에서 쳐들어와 샌디에고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요새를 만들고 정착을 했는데, 그곳을 예르바 부에나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예르바 부에나가든은 그때의 그 중심지가 아니었을까?




예르바 부에나 가든은 SoMA( South of Maket)의 중심부 쪽에 위치한 덕택에 근처에 볼 만한 곳들이 꽤 있다. 아까 들렸다온 SF MoMA나 세계 최초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센터인 Metreon, 마틴루터킹 쥬니어 메모리얼,이나 역시 계속 들렸다 온 Zeum, 모스콘 센터, 성 파트리치오(성 패트릭) 교회 등 정말 볼만한 곳의 딱 가운데 위치해서 안가볼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장소였다.









예르바 부에나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건 한 중년남성의 독서 삼매경, 따뜻한 햇볕과 산들산들한 바람,  시원한 분수의 물소리를 들으며 이곳이 지상낙원인듯한 곳에서 나무 그늘 밑 명당 자리를 잡고 독서에 흠뻑 젖어있는 모습이었다. 사진을 여러장을 찍어대도 쳐다도 안볼 정도였으니 그의 집중력이 부러웠다 아니아니 뭔가 자유로움과 한가함이 너무 부러웠다.




오늘의 날씨는 정말 너무 좋았다. 살짝 땀을 낼듯한 햇볕에 땀이 날 기세도 없이 날려버릴 산들산들한 바람 덕택에 오늘의 낮 여행은 가히 최고의 컨디션을 자랑했다.



샌프란시스코는 우리나라처럼 삼면이 바다이기 때문에, 물론 한쪽은 자연 만(Bay),한쪽은 만이 형성되는 통로, 이지만 암튼 바다로 둘러싸여 있기때문에 이렇게 갈매기를 도심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저거 갈매기 맞지요?;;ㅎㅎ



예르바 부에나의 가운데 한켠에는 시원하게 떨어지는 인공 폭포가 있는데, 그냥 이것만 보고간다면 의미가 퇴색 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 날씨가 덥다면 저 폭포 밑으로도 한번 들어가보자.




캬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물론 지금 글을 쓰는 한겨울엔 춥겠지만 말이다. 이곳은 인공폭포로서의 볼거리도 있지만 바로 마틴루터킹 메모리얼도 있는 곳이다.



이곳에는 마틴루터킹이 살아 있을때 남겼던 명언들이 대리석과 유리에 새겨져 있다. 

아까 자세히 봤다면 알겠지만 마틴루터킹 쥬니어라고 되어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마틴루터킹 2세라고도 하고, 2세는 생략하고 그냥 마틴루터킹이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1929년 조지아주 애틀란타시의 침례교 목사 마이클 루터 킹의 아들로 태어난 마틴루터킹은 아버지 이름을 그대로 물려 쓰면서 마이클 루터 킹이었지만 아버지가 개명을 하면서 마이클을 마틴으로 바꾸면서 마틴 루터킹 2세가 된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의문인건 마틴루터킹이 샌프란시스코에까지 메모리얼이 있는 이유가 가장 궁금했다. 여기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아무튼 여기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입구
I Believe that the day will come when all God's children from bass black to treble white will be significant on the constitution's keyboard. 
Martin Luther King Jr.
San Francisco, 1956


출구
No, No, we are not satisfied, and we will not be satisfied until 'justice rolls down like water and righteousness like a mighty stream.'
Martin Luther King Jr.
Washington, D.C, 1963




그리고 폭포 바로 안쪽으로 들어가면 샌프란시스코와 자매결연을 맺은 나라들로만 한해서 그 나라의 언어로 번역이 되어 유리판에 각인이 되어 있다.




중간에서 살짝 왼쪽에 우리나라 한글로 번역이 된 마틴루터킹의 연설문이 보였다.

"우리는 빨리 물질 중심 사회로 부터 인권을 존중하는 사회로 변화 해야만 합니다. 우리가 기계와 컴퓨터, 이윤추구 및 재산권 등을 인간보다 더 중요시 할때, 인종 차별 주의, 물질 주의 및 군국 주의의 세개의 기둥을 허물수는 없는 것입니다."
라는 말이 적혀있는데,

개인적으로 1900년대 중반 저먼 미국땅의 한 노예로 인식되던 한 흑인이 했던 말했던 이 연설문은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씨알도 안먹히는 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귓등은 커녕 손등으로도 들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 우리나라의 인권이 아마 정말 세계 경제 대국으로서의 한나라가 맞을지 의문이 더욱 크게 들었다.

잠시간의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고 그곳을 나왔다.



초록초록, 푸르른 싱그러운 그곳! 공원이 나온다.




아,,, 도심 속에서 찾은 사람들의 여유로움. 정말 한껏 만끽하고픈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아까 모스콘 센터에서 봤던 그 무지개 깃발도 보인다.




에라이, 좀 쉬자~~~~~~~~~~~~~~~~~~~
한국에서부터 스스로 몇달간 만들어온 여행책자를 던져두고,




그동안 쓰고 있던 선그라스와 나를 덮어주던 보들보들 포근한 옷과 이번 여행에서 가장 수고해준 카메라를 잔디밭에 내려뒀다.




그리고 나도 샌프란시스코의 여유로움과 자유 등을 만끽하기 위해 누구하나 신경 쓰지 않는 이곳에서, 누구하나 나를 알길 없는 이곳에서 잔디밭에 누워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 색깔마저 푸를것 같은 바람이 내 목을 간지르며 지나가면 내 눈은 나도 모르게 사르르 감겼다.


"아,,, 정말 좋다!"











Posted by 문을열어